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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칼럼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를 마치고, (08/23/26)
지난 주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를 마치며 특별한 예배를 위해 오랜 시간 함께 준비해주신 성도님들, 리더들, 집사님들, 목회자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배 안내부터 연합 찬양팀 섬김, 식당 봉사, 주차 관리, 선물 포장과 나눔, 창립기념 팜플렛 제작, 교회 역사 사진 앨범 편집, 비전센터 테이블 데코 및 세팅, 방송과 사진 촬영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드린 헌신을 보며 제 마음에 큰 기쁨과 감사가 차올랐습니다. 특별히 지역 이웃들과 신학생들, 목회자들을 기쁨으로 섬기는 성도님들의 모습은 큰 감동이었습니다. 또한 40년 이상 우리 교회를 섬겨오신 15분의 성도님들께 감사를 표하고, 새롭게 3분의 시무권사님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큰 은혜였습니다. 오랜 헌신과 새로운 헌신이 한 자리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지난 50년도 앞으로의 50년도 신실하게 이끄실 것을 다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창립 50주년 예배를 감
창립 50주년 기념 예배를 준비하며 (08/09/26)
다가오는 8월 16일 주일은 우리 교회가 창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온 세대와 지역 이웃들을 초청하여, 감사와 축제가 함께 어우러진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 예배를 준비하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음은, 지난 50년 우리 교회 가운데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이 루이빌 땅 위에 우리 교회를 세우시고, 신실하게 지켜주시고 인도해오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 모든 것은 사람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열심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오신 은혜였음을, 이번 예배를 통해 함께 고백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 위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나아갈 다음 50년을 기대하며 나아가길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번 기념예배는 단지 지난날을 돌아보는 자리에 머물지 않고, 앞으로의 비전을 위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루이빌 지역 가운데 하나님께서 품고 계신 뜻과 계획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그
내가 했지! (08/01/26)
한 연못에 개구리 한 마리와 새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 극심한 가뭄으로 연못물이 말라갑니다. 그곳에 계속 있다가는 개구리가 죽을 게 뻔합니다. 새들은 날아가고 또 다른 연못을 찾으면 되는데 개구리는 그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던 개구리가 한 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새 두 마리가 양쪽에서 나뭇가지를 물고 자신이 그 중간을 물어 함께 날아가는 것입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이겠습니까? 그런데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되었고, 동네 아이들이 새와 개구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며 말했습니다. “와, 진짜 멋지다! 누가 저렇게 멋진 아이디어를 냈지?” 그러자 나뭇가지를 물고 있던 개구리가 너무나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내가 했지!” 그 순간 개구리는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는 저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기 다른 은사가 존재합니다. 어떤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07/26/26)
저는 여행을 참 좋아합니다.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들을 보노라면, 세상이 참 크고 넓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넓음 앞에서, 제 눈에 보이는 좁은 삶에만 갇혀 아등바등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너무 작은 것에 집착하며 지내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이렇게 여행은 익숙하게 고정되어 있던 제 시선을 벗어나게 해 주고, 그 시선을, 그 마음을 새롭게 해 준다는 점에서 참 좋습니다. 성도님들의 배려 덕분에 오랜만에 휴가를 얻어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가족들과 친척들, 그리운 지인들을 만나고 이곳저곳 여행도 하면서, 익숙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쉼을 누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쉼 가운데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돌아보게 되었고, 하나님께 감사드릴 일들을 다시금 고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무엇보다 다시 한번 깊이 깨달은 것은, 집이 참 좋다는
예배는 월요일에 증명됩니다 (07/19/26)
어느 교회 목사님이 근처 상점에 들렀을 때의 일입니다. 계산대로 가자 가게 사장님이 기다렸다는 듯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목사님, 요즘 교회 예배가 참 좋은가 봅니다.” 목사님은 의아한 마음에 물었습니다. “사장님은 교회도 안 다니시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자 사장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동안 외상값을 미루던 분들이 하나둘 갚기 시작하더라고요. 예전보다 인사도 훨씬 밝아졌고요. 교회에 무슨 좋은 일이 있었나 싶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배를 한 시간의 예식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삶의 예배가 시작됩니다. 예배 가운데 받은 은혜는 우리의 말과 행동, 가정과 직장,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 속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삶의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월요일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는 예배를 드렸을지
하나님은 어떤 예배를 기뻐하실까요? (07/12/26)
우리는 종종 “오늘 예배가 참 좋았다.“라는 말을 합니다. 찬양이 은혜로웠고, 설교가 마음에 와닿았으며, 교제의 시간이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하지만 한 번쯤은 질문을 바꾸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오늘 예배가 좋았는가?“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예배를 기뻐하셨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J. C. 라일은 『예배』 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예배는 사람의 취향이나 전통이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대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배의 중심은 화려한 형식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며, 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경외함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의 길이나 규모보다 예배자의 마음을 먼저 보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예배를 평가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찬양은 어땠는지, 설교는 어땠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배를 평
예배는 감탄에서 시작됩니다 (07/04/26)
A. W. 토저의 『예배인가, 쇼인가』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토저는 사람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며 감탄할 수 있고, 웅장한 교회 건물에 들어가 외경심을 느낄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예배는 아니라고 합니다. 시인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감탄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폭풍우 치는 바다 앞에서 장엄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다면, 그 감탄은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영광과 은혜 앞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감탄이 삶의 고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너무 익숙하게 예배를 드립니다. 찬양을 부르고, 기도하고, 말씀을 듣지만 정작 하나님을 향한 감탄은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순서를 따라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바라보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감탄하고, 십자가의 은혜
총회를 참석하고 와서 (06/14/26)
저는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 4박 5일간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열린 제45차 미주 남침례회 한인교회 총회에 다녀왔습니다. 미주 전역 800여 한인침례교회의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단과 교회의 중요한 결정들을 함께 나누는 자리인데, 올해는 총회법이 수정, 통과되어 침례교의 정신과 방향을 더욱 굳건히 세우게 되었습니다. 제가 총회에 참석할 때마다 제 마음에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 침례교단이 전도와 선교에 온 힘을 기울인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침례교는 개교회의 자치권을 소중히 여기는 교단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은, 우리는 경계를 넘어 하나가 됩니다. 매년 총회는 해외선교와 국내선교의 결과를 함께 보고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며, 선교사들을 함께 파송하는 귀한 결단의 시간을 갖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침례교의 진정한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서 있으면서도, 복음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마치며, (06/07/26)
지난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3일동안 Kids VBS를 은혜 가운데 마쳤습니다. Illumination이라는 주제 아래, 22명의 아이들이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 하루하루를 말씀과 찬양, 웃음으로 가득 채워 나갔습니다. 노다빈 사모님과 Youth 찬양팀의 인도로 신나는 워십댄스로 하루를 열고, 이풍주 목사님과 윤믿음 전도사님을 통해 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5개의 반으로 나뉘어 교사 선생님들과 함께하는 분반공부와 Craft 시간, 오후의 레크리에이션과 물놀이, 바운스 하우스까지, 아이들은 온몸으로 그 시간을 누렸습니다. 김밥, 떡볶이, 피자로 차려진 점심과 수박, 솜사탕, 음료 간식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했습니다 :). 그리고 VBS를 마치고 섬김이들과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같이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말씀을 전하는 것도 물론 귀하고 소중했지만, 아이들
어린이 여름성경학교를 시작하며, (05/31/26)
이번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오전 9:30~오후 2:30) 자녀들을 위한 Kids VBS가 진행됩니다. 매년 하는 성경학교이지만,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 시간은 언제나 제 마음을 기쁘고 설레게 만듭니다. 예배당에서 즐거워할 아이들의 모습이 기대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믿음이 자라나 평생의 삶을 주님께 드리게 될 것을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마 18:2-5)'의 핵심은 바로 수용성(Acceptance)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계산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고 정직하게 그대로 받아들일(accept) 때 비로소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저는 이번 여름 성경학교를 통해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 그 영혼에 하나님의 말씀이 건강하게 심겨지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되기를 간절히 기
은혜를 기억하는 지혜 (05/24/26)
이번 주는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기억하는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가 있는 주간입니다. 세상이 지나간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우고 국경일을 지키듯, 영적인 삶에서도 신앙의 성숙과 위기 돌파의 열쇠는 다름 아닌 '기억함'에 있습니다. 탈무드 전권을 영어로 번역한 랍비 아딘 스타인잘츠는 "고난이 나를 짓누르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아주 흥미로운 처방을 내립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컴퓨터를 켜서 그동안 하나님이 내 삶에 행하셨던 일들의 파일을 검색하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어려움이 아무리 커 보일지라도,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마음의 컴퓨터에 가득 저장되어 있고 그것을 왜곡 없이 검색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역사를 가장 길고 심도 있게 기억하는 시편 78편은 '마스길', 즉 '지혜의
영어예배를 시작하며 (4): 한 가족으로 맞이하는 우리의 준비 (05/16/26)
언어와 문화의 경계를 넘어 하나님의 가족 된 영어예배 성도님들을 품는 것은 참으로 가슴 벅찬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회 공동체는 이 거룩한 부르심 앞에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먼저, 환대의 마음으로 그들을 맞이해 주세요. 복음은 자격 없는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주신 하나님의 거대한 환대입니다. 낯선 문화 속에서 우리 교회 문을 두드린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따뜻한 눈빛과 미소로 “Thank you for coming! We welcome you!”라고 인사해 주세요. 이처럼 그들을 단순한 방문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내 가족'으로 여기는 따뜻한 환대가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세요. 새롭게 세워진 영어예배가 구원의 감격이 넘치는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개인 기도 시간과 Life Team 모임 때마다 영어예배 성도들과 그 예배를 위해서 함께 기도해 주세요. 우
어머니라는 이름의 천사 (05/10/26)
한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날 밤, 하나님과 마지막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내일 지상으로 보내신다고요? 이렇게 작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로 태어나서 어떻게 살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만을 위한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단다. 그 천사가 늘 네 곁에서 돌봐줄 거야." "하지만 저는 말을 모르는데, 사람들이 하는 말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죠?" "네 천사가 세상에서 가장 감미롭고 아름다운 말로 너에게 이야기해 줄 거야. 그리고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말하는 법도 가르쳐 줄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래도… 제가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싶을 땐 어떻게 해요?" "그럴 땐 네 천사가 네 작은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법을 알려줄 거란다." "지상에는 나쁜 사람도 많다던데, 저 자신을 어떻게 보호하죠?" "네 천사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너를 지켜줄 거야." 그 순간 하늘이 고요해지고, 저 아래 지상에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영어예배를 시작하며 (3):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요? (05/03/26)
지난 시간들에 이어, 오늘은 우리 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영어예배’가 과연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그 비전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영어예배는 특정 소수만을 위한 예배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더 넓고 깊은 연합을 위한 귀한 통로입니다. 같은 시간, 같은 교회 안에서 온 가족이 '따로 또 같이', 각자의 언어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리가 꿈꾸는 비전입니다. 특별히 영어는 편하지만, 부모님의 영향으로 정서와 문화는 여전히 한국적이어서, 미국 현지 교회 낯설고, 한국어 예배는 언어의 장벽이 느껴졌던 이민 2세분들, 한국어가 서툴러 예배의 감동을 온전히 누리기 어려웠던 외국인 배우자 분들 모두를 한 가족으로 품는 예배입니다.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주로 떠났던 우리 아이들이 언제든 다시 돌아와 "이곳이 바로 내 교회구나"라는 소속감을 잃지 않고 신앙의 끈을 이어갈 수 있는 예배가 영어예배입니다. 뿐만 아니라, K-pop, K-drama
영어예배를 시작하며 (2): 영어부가 아닌 영어예배! (04/26/26)
많은 한인 이민 교회에는 "영어부"가 있습니다. "부(部)"란 부서, 부문, 청년부, 중고등부처럼 어딘가에 속한 하나의 조직을 가리킵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부는 "한인 이민 교회 안의 하위 부서"처럼 자리 잡게 되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경계선들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조직이다 보니 경계가 생기고, 그 경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주도권의 문제가 불거지기도 합니다. 하나의 교회, 하나의 공동체임에도 한어부와 영어부가 각각의 부서로 존재하다 보니, 같은 방향을 바라보기보다 서로를 의식하며 긴장 관계에 놓일 때가 생깁니다. 한쪽은 "왜 우리 방식을 따르지 않느냐"고 느끼고, 다른 쪽은 "왜 우리를 간섭하느냐"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많은 한인 이민 교회들이 오랫동안 씨름해 온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교회에서 Leigh Miah 목사님과 함께 세우려는 것은 영어부(English Ministry)가 아니라, 영어예배(English S
영어예배를 시작하며 (04/19/26)
드디어 오늘, 우리 교회에 영어예배가 새롭게 시작됩니다.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해왔던 영어예배의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몇 주에 걸쳐 목회칼럼을 통해 영어예배에 담긴 목회적 비전을 함께 나누어 가려 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영어예배를 인도해 주실 목사님을 간단히 소개하고 예배 시간과 장소에 관한 기본적인 안내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난 주 예배 시간에 인사한대로 영어예배를 인도해 주실 분은 Leigh Miah 목사님 입니다.(“리 미아”라고 발음하시고, 친근하게 “리” 라고 불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영국 런던 출신이신 Leigh 목사님은, 루이빌 출신의 아내 Amanda를 만나 이곳 루이빌에 정착하시게 되었고, 담임목회자로도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런던에서 한국인 총장이 이끄시는 신학교에서 공부하셨기에 한국인과 한국 문화에 깊은 이해와 따뜻한 애정을 갖고 계셨던 차에, 올해 초 저와 연락이 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과 만나 한
상처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 (04/12/26)
누구나 삶 속에서 큰 고통과 아픔, 상처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하기도 하고,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 충격으로 인해 우울감과 실패감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를 더욱 괴롭게 하는 것은 그 아픔 자체보다, 그것을 마음속에서 반복하며 곱씹는 우리의 생각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는 최악이야. 나는 실패했어. 나는 구제불능이야.” 이러한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며 우리의 정체성을 흔들고, 두려움과 염려를 키워갑니다. 하지만 이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상처와 아픔, 고난과 절망의 순간들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상황 속에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으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벌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꼭 필
부활을 살다 (04/05/26)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수를 믿지 않는 한 새 신자가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새 신자에게 먼저 다가가, 보이지 않는 손길로 그를 살피며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함께 식사하며, 그의 어려움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이 가진 것을 살포시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새 신자는 세상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받으며 크게 감격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의아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그 성도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잘해 주십니까?” 그때 그 성도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잖아요.” 무슨 의미일까요?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나도 부활할 수 있고, 새 사람이 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부활의 삶이 무엇인지 당신에게 보여 주고 싶고, 함께 그렇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삶입니다. 부활은 단순히 믿어야 할 사건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삶이라는 것입니
고난주간을 맞이하며 (03/29/26)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주간(Holy Week)이 시작되는 첫날, 부활주일을 앞둔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한 데서 유래하여 이 날을 종려주일(Palm Sunday)이라고 부릅니다(요 12:13). 2천 년 전, 예수님은 바로 이 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마 21:8-9), 목요일에는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나누셨습니다(마 26:26-28). 이후 체포되시고(마 26:47-50), 재판과 고문을 받으신 뒤(마 26:67-68), 금요일 아침 빌라도 총독의 명령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마 27:24-26, 35).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금요일을 성금요일(Good Friday)로, 그리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을 부활주일(Easter Sunday)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의 사건과,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부활의
전쟁 속의 그리스도인의 자리 (03/22/26)
최근 미국과 이란 사이의 군사적 긴장과 충돌로 인해 국제사회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갈등은 단순히 한 번의 사건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이란과 이스라엘 사이의 오랜 갈등을 비롯해 중동 지역에 쌓여 온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긴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신앙적인 혼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이라는 이유로, 어떤 이들은 현재의 이스라엘과 그 동맹국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과 행동을 모두 정당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려옵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땅과 축복의 말씀을 근거로, 오늘날의 정치적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존 파이퍼 목사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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